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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팀펑크 AU/스토리

[스팀펑크] 2화

2. 현자의 돌

도시의 구역들 중 가장 이질적인 구역을 꼽자면 당연하게도 중심구역이다. 시청과 철도 등 여러가지 시설들이 있는 C를 중심으로 사방으로 나뉜 4개의 구역과 그 구역 내에 빽빽히 들어찬 거주용 건물들. 그 건물들 안을 가득 채운 사람이 사는 방들. 거주지라는 목적을 충실히 이행하는 곳이었다. 가장 많은 사람이 살고 있음에도 사람이 사는 냄새가 나지 않는다는 점이, 가장 아이러니했다.

이 도시의 시장은 상징적인 존재였다. 선대 시장들이 차례차례 쌓아올린 체제는 자리에 굳어져 제 역할을 잘 하고 있었다. 각별은 그 자리에 가만히 버티고 서서 간간히 발생하는 문제에 관련된 서류를 확인하고 도장 몇 번 찍기만 하면 되었다. 갑작스럽게, 비교적 어린 나이에 시장직에 올랐음에도 별 잡음이 없었던 이유였다. 그 점이 꽤나 마음에 들었다.

"아, 난 진짜 모른다니까요! 마법이고 뭐고, 내가 한 게 아니라고!"

요란한 소리와 함께 집무실 문이 열렸다. 노크는 없었지만 계단을 올라오는 내내 발소리가 들렸으니 상관은 없다. 각별은 들고 있던 커피잔을 책상에 내려놓고 문 앞에 결박된 채 서 있는 잠뜰을 바라보았다. 낡은 앞치마 주머니 속에서 금색 빛이 새어나왔다. 다른 동력원이 없는 상태에서 저런 빛을 낼 수 있는 건 단 하나밖에 없지. 각별은 잠뜰을 끌고 온 헌병단을 물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위압감을 줄 생각은 없었으나 그의 뒤로 보이는 큰 창문과 거기서부터 흘러들어오는 금색 태양빛은 잠뜰로 하여금 입을 다물게 하기 충분했다. 잠뜰은 타는 목을 침으로 축이고 겨우 입을 열었다.

"왜 저를 마법연구처벌부서가 아니라 이 곳으로 데리고 온 거예요?"
"그쪽이, 내가 원하는 걸 갖고 있어서요."
"아니, 이건 내 물건이 아니라니까요? 난 그냥 수리공이라구요. 이건 오신 손님이 맡긴 시계에 들어있었을 뿐이고!"

잠뜰은 억울함에 핏대를 세웠다. 각별은 별 대꾸 하지 않고 빛이 새어나오는 잠뜰의 앞치마를 바라보았다.

"가지려면 가져가요!"

잠뜰은 주머니 속에 든 돌을 각별의 발 앞으로 내던졌다. 마법같이 빛이 사그라들었다. 어, 아까까진 그렇게 빛났는데? 잠뜰은 의아함에 돌에 시선을 고정했다. 각별은 찬찬히 돌을 뜯어보았다. 희미한 오색빛. 아까까지 발하던 금빛은 분명 저 주머니 속의 다른 무언가와 반응하면서 내던 거겠지. 각별은 돌을 주워 책상 앞의 타자기에 가져다댔다. 생각대로, 돌과 타자기는 찬란한 빛을 뿜어대기 시작했다. 너무나 밝고 아름다워 사람을 홀리는 빛을. 잠뜰은 그 광경을 넋을 놓고 지켜보았다. 아름다웠다. 저 빛이 비추는 낡은 시장실의 풍경도, 때마침 건물이 삼켜버린 태양도. 시장실 벽면에 박혀있던 용도 모를 톱니바퀴가 고동색의 반사광에 뒤덮였다.

"… 그래서 대체 뭔데요. 저 돌은?"
"현자의 돌이라는 걸 들어보신 적 있으실 겁니다."

무한한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는 전설 같은 돌. 그걸 만들어내기 위해 많은 연금술사들과 마법사라는 이름의 과학자들이 죽어나갔죠. 각별은 돌을 타자기와 떨어트려두었다. 이 타자기는, 상징물이라고 불리는 겁니다. 옛날 어느 마법사들이 현자의 돌을 만들어내고, 그 힘을 상징물들 속에 나누어 넣어두었다는 이야기가 있죠. 각별은 잠뜰의 주머니 안을 가리켰다. 아마 그 안에도 상징물이 있겠죠. 주머니 속에 죽은 듯이 들어있던 태엽을 꺼냈다. 각별과 잠뜰의 시선이 마주쳤다. 할아버지는 왜 이 태엽을 가지고 있던 거지?

"… 저희 할아버지가 마법사였다는 말씀이세요?"
"잠뜰씨 할아버지 대 정도의 물건이 아닙니다. 적어도 100년은 넘게 거슬러올라가야하는 역사가 있는 물건이에요."

각별은 도로 의자에 앉아 턱을 괴었다. 잠뜰은 갑작스레 벌어진 상황과 들어오는 정보를 정리하느라 잠시 자리에 멈춰 눈을 굴렸다. 그래서, 제게 왜 저런 걸 보여주시는 건데요? 더듬거리며 나오는 말끝이 썼다.

"잠뜰씨가 현자의 돌을 찾아주셨으면 합니다."

*

도시에 역병이 돈 건 각별이 시장이 되고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젊은 시장은 여태껏 일어나지 않았던 작은 재앙을 마치 일어날 줄 알았다는 양 능숙하게 처리했다. 온몸이 검게 변해 죽어버린 시체는 기타 구역에 작은 안치소를 만들어 처리하고, 감염자가 제일 많이 나온 D구역을 빠르게 봉쇄했다. 사람들은 그제서야 이 도시의 시장이라는 존재가 그저 상징으로만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바쁘게 돌아가던 체제가 붕괴하는 것을 얼추 막은 것도 그였고, 붕괴된 체제를 빠르게 복구한 것도 그였다. 다만 D구역의 폐쇄와 그로 인한 소요사태, 수많은 사상자들로 인한 인력 부족은 그 혼자의 힘으로 해결하기 벅찼다. 체제가 돌아가려면 그 사이에 끼어있을 수많은 톱니바퀴가 필요하다. 그 바퀴들이 못해도 20% 이상 소실되어버렸으니, 대체거리가 필요했다.

*

"그런데 그건 전설 속에나 나오는 거잖아요. … 지금 보니 아닌 것 같지만. 그걸 어떻게 찾아요?"

가뜩이나 얼마 남지 않았던 마법사들은 마법연구가 금지된 이후 종적을 감췄다. 잠뜰의 기억 하에, 마법 연구를 몰래 진행하면서도 잡혀가지 않은 사람은 없었다. 헌병대에게 있는 마법 감지 장치, 그걸 쓰면 현자의 돌 정도야 쉽게 찾아낼 수 있을텐데 왜, 고작 시계를 수리하는 기술 밖에 가지고 있지 않은 자신에게 이런 일을 맡기는 지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시장님이시니 보상이야 충분하겠지만.

"상징물이 있으시잖습니까. 현자의 돌은 상징물과 만나면 보셨다시피 찬란한 빛을 냅니다. 그리고, 상징물과 현자의 돌은 무언가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힘에 의해 이끌린다는 이야기도 있고요. … 어렵진 않을 겁니다."

각별은 마치 집 앞 가게에 심부름이라도 부탁하는 듯한 가벼운 말투로 말을 이었다. 잠뜰은 거절하려고 했으나, 가게로 들이닥쳤던 헌병들과 마법 연구 하던 것을 들켜 처벌당했던 일부 연금술사들을 생각했다. 눈 앞의 젊은 시장은 허수아비가 아니었다. 말하는 투로 보건대 사람을 다루는 법을 안다. 여기서 발을 뺀다면 관련 법령으로 잡아넣는다느니, 장사 허가를 박탈하겠다느니 하는 협박을 할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잠뜰은 쓸데없는 충돌을 피하고 싶었다.

"… 그 상징물이 어떤 것들인지는 알려주셔야하는 거 아녜요? 뭔가 많이 알고 계시는 듯 한데, 최소한의 힌트라도…."

각별은 주머니에서 펜을 꺼내더니 작은 종이에 글씨를 적어 건넸다. 기술구역 L-01. 수현 사서 앞. 법령을 어긴 자는 엄벌할 것. 아무것도 모르는 잠뜰이 보아도 암호였다.

"제가 다 알지는 못합니다만, 그 쪽지를 사서 수현에게 주면 자료가 있는 곳을 안내해줄 겁니다. 마법에 대한 자료는 금기사항이라, 대놓고 드릴 수는 없어서요."
"아, 예…."
"무운을 빕니다. 당신이 이 도시의 희망이에요."

잠뜰은 쪽지를 쥔 채 시청 앞에 섰다. 갑작스레 벌어진 많은 일들에 머리가 멍했다. 시청 앞을 지키고 선 헌병의 눈초리가 매서웠다. 주머니 안의 태엽은 눈치도 없이 무거웠다. 가야한다. 얼떨결에 승낙해버렸지만, 이미 무를 수는 없었다.

잠뜰은 기술구역으로 가는 마차에 몸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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