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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창작

[3 DAYS : 좀비사태] 양자택일

그대는 인간인가?

끄륵, 끄르륵. 벌어진 입술 새로 인간의 것이 아닌 소리가 들렸다. 라더는 그 앞에 대충 구겨앉았다. 총구멍 사이로는 흐르는 게 없었다. 수현의 피는 온기를 받지 못한지 꽤 되어 굳어버렸으니 당연한 일이다. 잠뜰이 그 심장에서 억지로 빼내어 섞은 피가, 수현의 몸에 흘렀던 마지막 온기였다. 라더는 수현의 눈을 감겨주어야하나 고민했다. 이미 무너지고 어질러진 얼굴에 손을 대려니 조금 망설여지기야 했다. 입에서 피가래가 끓었다.

"… 왜."

끄륵거리는 소리 위로 작지만 확실히 분간할 수 있는 소리가 새어나왔다. 라더는 눈앞에서 손을 멈췄다. 뭐야. 아직 말이 나와? 하는 순수한 의문이 막을 틈 없이 새어나왔다. 수현이 이미 썩어버린 팔을 들어 라더의 손목을 쥐었다. 응어리 진 것들이 주륵 흘러내렸다. 주황색 눈동자가 그와 맞닦뜨렸다.

"좀비들의 세상을, … 만들자고 했으면서."
"그래서 네게 말해줬잖아. 백신 제조법을 아는 사람을 죽이라고."
"왜 저 사람을, 도왔어.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았으면…."
"저 인간은 아무것도 몰랐어도 널 죽였을 걸."
"장난해?"

지금 그런 소리 하는 게 아니잖아. 분에 찬 그르륵 소리가 구멍난 폐에서 흘렀다. 라더는 아예 털썩 주저앉고는 턱을 괴었다. 건조한 시선이 수현을 훑었다. 곧 죽겠네. 반쪽짜리 좀비인 상태로 그리 총을 맞았으니, 다시 살아날 가능성은 없겠지. 수현이 왁왁거리며 성을 내는데도, 그냥 그리 바라만 보고 있었다.

이내 시선이 죽어가는 몸뚱이에 흥미를 잃고 돌더니, 주유소 한쪽에 대충 널브러져 버려진 가방에 닿았다. 아파트에 갔더니 저게 있었더랬다. 저것밖에 없어 소중한 물건임이 확실하다고 생각하고 가져왔더랬다. 라더의 기억에는 없는 물건인데도. 사실 그 소중한 물건이라는 게 뭔지도 기억에 없었다. 아파트에 두고 왔다는 것만 어렴풋이 떠오를 뿐. 라더는 제가 아는 것들을 가만 곱씹었다. 이름은 라더. 나이는…. 직업은…. 이상하다. 직업은 분명 기억을 하고 있었는데. 어느새 이 바이러스라는 놈이 뇌의 반 이상을 집어삼켰나보다 하고 넘겼다. 이제는 기억할 가치도 없는 것들이었다. 이름을 불러줄 사람은 존재하지 않고, 직업을 내세울 곳도 없어졌으니. 종말 앞에서 개인정보란 얼마나 쓰잘데기 없는 것이던가.

마지막 힘까지 짜내어 소리를 지르던 수현이 별안간 뚝 멈췄다. 라더도 흙먼지를 털어내고 일어났다. 그 인간은 백신을 마시고 벌써 멀리 나갔겠지. 도시 밖으로 향한 길로 시선를 냈다. 이 도시 밖에는 살아남은 인간들이 있을까? 그 인간은 밖에 나가서 무엇을 보았을까. 궁금증이 피었지만 해소할 생각은 하지 않았다. 밖이 이 곳과 마찬가지로 좀비 밭이라면 의미가 없고, 살아남은 인간들이 일상을 회복하려고 노력하는 중이라면, … 그곳에 라더의 자리는 없다. 당연하게도.

라더는 괜히 손을 말아쥐었다. 반쯤 썩어버린 피부가 퍼석하게 패였다. 움직이는 다리에 감각이 없었다. 그 편이 낫다.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는 건 이럴 때에는 오히려 축복이다. 관절이 썩어 잘 움직이지 않는 한쪽 다리를 이끌고 가방을 들었다. 숨을 한번 마셨다. 그을음 냄새가 났다. 라더는 이제는 흔적만 남은 시계탑을 바라보았다. 듬성듬성 비어버린 기억이 흔적을 재조립했다. 의미는 없지만.

어째서 반만 썩어버린 걸까. 완벽하게 인간으로 살아남지 못할 거라면 차라리 완벽하게 좀비가 되어버리는 편이 나았다. 이미 그렇게 살아왔다. 반만 썩은 채로 눈을 뜬 이후로 그는 좀비와 다름없이 살았다. 먹지 않아도 살았지만 욕구를 이기기 힘든 날에는 딱히 죄책감 없이 사람이었을 것을 먹었다. 피투성이 의자에 앉아 시간을 썩혔고, 밤이면 대충 눈을 감았다. 혀에 감도는 비릿한 삶의 향에 구역질하기도 고작 며칠이었다. 감각이 죽어버린 이후로는 그런 거부반응도 일어나지 않았다. 대충 3일쯤 전, 마지막까지 숨어있던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했을 때는 그냥 몸을 숨겼다. 어차피 며칠 후면 죽어 저와 똑같이 썩어가는 몸을 붙잡고 울부짖을 이들인데, 굳이 마주쳐서 안 그래도 하자 투성이가 된 몸에 구멍이나 더 내고 싶지는 않았다.

그의 생각대로 한 명은 썩어가는 몸을 이끌고 그를 만났고, 한 명은 그를 제대로 마주치기도 전에 죽은 듯 했으며, 한 명은, 검은 눈동자를 형형하게 빛내며 다가왔다. 처음에 만난 수현에게는 절망을 안겼다. 어차피 망해버린 세상. 어차피 누구도 살아나가지 못할 세상, 그냥 숨이라도 편하게 쉬어보자는 생각이었다. 백신 제조법을 아는 인간이 있다면 죽이라고 한 건, … 글쎄. 그저 심술이었던 것 같다. 어차피 백신이 만들어진다고 한들 자신에게는 무용지물이니까. 이 판국에 아직 따뜻한 피를 가진 좀비가 흔할 리도 없고. 그냥 헛된 희망 붙잡고 아득바득 사느니 포기하게 만들 생각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뭐가 되었든, 라더는 좀비에 가까웠다. 좀비들이 냄새를 맡고 덤벼들지 않고, 살이 썩고 심장이 뛰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리고 잠뜰이 찾아왔다. 만들어지다 만 백신을 손에 쥐고, 얼굴에 그을음과 체액을 잔뜩 묻히고. 잔상처들에 소독약을 들이붓고 붕대를 칭칭 감은 채 찾아왔다. 당신이 이 연구일지 쓴 사람이에요?

라더는 제 직업을 도로 기억해냈다. 맞다. 백신을 연구하던 사람이 나였지.

미완성 백신을 들고 방법을 알려달라고 하는 그 눈이 또렷하게 떠올랐다. 어떻게든 생을 이어가고자하는, 썩어들어가지 않은 인간의 눈. 라더는 그런 눈을 참 오랜만에 보았다. 뒤에 숨어있는, 자신이 절망을 들려보낸 좀비가 시선에 걸렸다. 라더는 이유도 모르고 잠뜰을 그 곳에서 내보냈다. 서두르라는 말과 함께. 이후는 모두가 알다시피, 잠뜰은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에게 소중했을 어떤 물건을 들고 왔으며, 그의 눈 앞에서 절망을 죽였고, 모든 것들을 끌어안은 채 도시를 빠져나갔다.

라더는 주유소 의자에 걸터앉았다. 기억이 끝자락부터 썩어들어가고 있었다. 늦추는 것도 한계가 찾아온 모양이었다. 썩어들어가는 손과, 다리를 보았다. 백신이 완벽하게 된다면 당신도 구하러 와줄게요. 그렇게 말하던 눈이 살짝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이미 늦었다. 라더는 이미 완벽히 감염된 상태였다. 인간이냐 좀비냐를 따진다면 그는 좀비였다. 생은 인간에게나 주어져 마땅한 것이었다. 잠뜰은 이 곳에 돌아오지 않을 것이고, 수현의 시체는 저렇게 있다가 어느 순간 까마귀 떼에게나 뜯어먹힐 것이며, 라더는 체액을 뚝뚝 흘리며 도시를 배회하게 되리라. 주머니 속에 가만 넣어둔 권총이 손끝에 걸렸다. 라더는 생각했다. 나는, 좀비인가. 나는, 생각하고 있음에도, 좀비인가. 전등불이 틱틱거리다가 곧 꺼졌다. 새삼스레 암흑이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