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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Underground

From. Underground (1)

1. 밑바닥


세상은 썩었다. 구제의 여지 없이 썩어문드러졌다. 그게 공룡이 입버릇처럼 말하는 명분이었다. 경찰은 뒤로 돈을 받아처먹고 죽어가는 사람을 발로 차 숨겨주며, 정치인은 높은 곳의 표를 받기 위해 밑에 있는 사람들을 발로 짓밟는다. 어디서 벽돌이 떨어져 사람 머리가 깨져도, 의사는 돈을 받지 않으면 치료해주지 않는다. 낮은 밤이고 밤은 더 깊은 어둠인 곳이,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이다. 공룡의 익숙한 일장연설이 끝나자 기다렸다는 듯이 라더는 일어나 무릎을 털고 수현은 하품을 하며 툴툴거렸다.

"말 긴 거 봐라. 그래서 남의 집 터는 건 그런 것에 비하면 약과다?"
"내 말은 우리가 하는 일까지 그냥 죄라고 뭉뚱그려지면 안된다는 얘기지."
"공룡아. 우리 죄 짓는 건 맞아."
"그럼 넌 올바르게 살다가 길거리에서 굶어죽든가."

말이 그렇다는 거지. 라더는 익숙하게 중얼거리며 손에 낀 장갑을 더 꽉 맞게 당겼다. 낡아빠진 의류수거함에서 적당히 주워온 거지만 흔적을 남기지 않기엔 딱이었다. 공룡은 제 연설에 용기라도 얻은 듯 힘차게 일어나 몸을 풀었다. 수현은 그냥 하던대로 멍청이들 지갑이나 털지 무슨 바람이 들어서 스케일을 이렇게 키우냐며 투덜거렸다. 셋의 시선이 골목 끝을 살피다가 한 곳을 향했다.

남루한 집들이 뭉쳐있는 더러운 골목들 사이에 이질적으로 자리잡은 으리으리한 저택. 정치계 인사분께서 서민들의 삶에 귀기울이네 뭐네 하며 지어둔 보여주기식 자택이었다. 말이 자택이지, 별장이나 다름 없었다. 이 곳에 그가 찾아오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 선거철에야
서민들의 손과 악수하는 바람에 더럽혀진 제 손과 몸을 씻으러 하루이틀은 머물까? 그렇기에 밑바닥에 붙어 사는 도둑들의 타겟이 되기 쉬웠다. 가령, 지금 담벼락에 붙어 동태를 살피는 세 청소년들 같은. 그럼에도 경비를 강화하지 않는 건 그가 짓밟아온 밑바닥 벌레들에 대한 마지막 자비일까. 라더는 쓸데없이 그런 생각을 했다.

공룡은 늘 동정심을 가지지 말라고 이야기했다. 그들이 안타까워해야할 피해자는 본인들이 아니라 우리라고. 우리는 일생을 피해자로 살고 있다는 걸 잊지 말라고 이야기했다. 라더는 그 말에 어느정도 동의했다. 이 세상을 얽어매고 있는 하나의 큰 안개 속에서 그들은 언제나 허덕였다. 쓰레기통을 뒤졌고 먼지 섞인 비를 맞았다. 경찰은 그들을 집에 돌려보내기보다는 감옥에 처넣기를 우선했다. 실적을 채우고 싶은 거지. 언젠가 수현이 냉소적으로 중얼거렸다. 공룡은 낄낄거리며 마음에 든다는 듯 수현의 등짝을 조금은 아픈 소리가 나게 쳤다.

수현이 정문에서 능숙하게 야간경비의 시선을 끄는 동안 공룡이 뒷 담벼락을 타고 올랐다. 생각보다 높아 라더의 도움이 필요했다. 라더는 제 어깨를 선뜻 내주고는 공룡이 밟을만한 요철을 손으로 짚어주었다. 어느새 꼭대기에 도착했는지 어깨의 하중이 턱 풀렸다. 라더는 어깨를 돌려 풀며 공룡이 사라진 담벼락 너머를 바라보다가, 정문 쪽으로 향했다. 수현은 라더가 걸어오는 걸 눈치채고는 경비를 원래 있던 자리로 돌려보냈다. 곧 공룡이 요란하게 시선을 끌어 경비들을 모으고, 라더와 수현은 그 틈을 타 유유히 정문으로 입성했다. 각자의 이유로 어린 나이에 길거리에 내몰린 지 거진 10년. 셋은 어엿한 한 팀이 되어있었다. 라더와 수현은 잘 쓰이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복도 구석으로 잘 숨어들었고 공룡도 경비를 용케 따돌리고는 뒤늦게 합류했다. 손전등 불빛과 분주한 말소리가 창틀을 뚫었다.


"침실이 어디랬지?"

"2층 맨 끝방."

"비어있는 거 맞아?"

"선거가 끝난게 벌써 3개월 전이야. 아직까지 여기에 계실 이유가 없다는 거지."

 

공룡은 자신있게 제 가슴팍을 주먹으로 팍 치고는 계단참을 향해 달렸다. 마당의 경계가 삼엄한 만큼 저택 안은 허술했다. 간간히 돌아다니는 일거리 잃은 하녀들은 주의해야겠지만, 주인이 없는데 이런 야밤까지 깨어서 일할 만큼 순종적이고 성실한 사람은 더 이상 이 도시에 없다. 라더와 수현도 공룡의 뒤를 따랐다. 발소리를 내지 않는 것과 빠르게 움직이는 것 둘 중 무엇을 우선해야할까 잠깐 고민했다가, 절충안을 택했다. 여섯 개의 발이 바쁘게 계단과 복도를 지났다. 복도 벽면을 빼곡히 채운 문이 갑자기 요란하게 고자질을 할까봐 심장이 쿵쾅거렸다. 분주히 움직이는 경비들의 발소리와 심장소리가 구분되지 않았다. 라더는 간간히 바쁘게 뒤를 돌아보았다. 공룡과 수현은 그저 목표를 향해 달렸다. 화려하게 조각되고 금테가 둘러진 침실 문을 향해.

"…뭐가 이상하지 않아?"

라더가 갑자기 자리에 멈춰섰다.

"뭐?"
"경비들. 우릴 찾는 게 아닌 것 같아."
"그게 무슨 소리야?"
"기다려. 한번 들어볼게."

수현은 귀를 쫑긋거리며 바깥 소리에 집중했다. 1층과 정원을 오가는 발소리들이 난잡하게 뒤섞였다. 총을 장전하는 소리도 어렴풋하게 들렸다. 잡으면 죽여도 좋다. 살벌한 경고는 덤으로 들렸다. 으, 매정한 것들. 수현은 미간을 찌푸렸다. 옆에서 공룡이 뭐가 들리냐며 소근거렸다. 라더가 입에 손가락을 가져다대어 쉿, 하고 말렸다. 수현은 다시 소리에 집중했다.

발소리가 하나 줄었다. 정확하게는 군화소리가 줄었다. 경비의 군화소리 하나가 사라지고 그 자리를 구둣발이 살짝 채웠다가 도로 사라졌다. 침입자가 있어. 우리 말고 하나 더.
수현의 짧은 브리핑에 모두 숨을 멈췄다. 유연히 타이밍이 맞아 함께 숨어든 부랑자인가. 그렇다기에는 용의주도했다. 방금 경비 하나를 처리했어. 수현이 짧게 덧붙였다. 모두가 같은 생각을 했다. 위험한 것이 끼어들었다.

"… 뭐든 간에 안 마주치는 게 좋겠지?"

"챙길 것만 챙기고 가자. 이 앞이야."

 

조각에 금테가 붙은 문을 밀어 열었다. 끼익거리는 소리 하나 없이 부드럽게도 열렸다. 높이만 더럽게 높은 건물들 틈새를 비집고 들어온 달빛이 퀸 사이즈 침대 위에 구겨짐 없이 덮인 흰 이불을 비추었다. 삼면을 덮은 서랍과 옷장이 보였다. 서랍장에 달린 장식 하나만 떼어다 팔아도 한달은 배 곯을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보였다. 잠시 보여주기 식으로 머물 곳을 이렇게 호화롭게 꾸며두었다 이거지. 어금니가 바득 갈렸다. 수현과 라더도 같은 생각을 하는지 목과 뺨을 잇는 혈관이 두드러지게 튀어나와있었다. 의원이 저 침대 위에 아무 것도 모르고 누워있었다면 목을 졸라버렸을텐데. 짓밟힌 만큼 지르밟아버렸을텐데. 

 

벽에 붙어있는 옷장에는 고급 가죽으로 만들어진 겉옷이 가득했다. 거울이 붙은 서랍장 안엔 금과 은으로 뒤덮인 장신구와 값나가는 향수가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수현은 그 안에 무언가 더 있을까 손을 뻗었다. 장신구들을 팔아넘겨도 충분하지만, 현금이 필요했다. 안전하면서 확실한 것이 필요했다. 공룡은 침대를 뒤졌다. 최대한 들른 티를 안 내는 게 좋은가 싶었지만, 이미 경비들이 알아차린 마당에 더 몰래 할 것이 어디있겠나 싶었다. 중간중간 수현에게 접근하는 사람이 있는지 묻는 것도 잊지 않았다. 수현은 간간히 귀를 쫑긋거렸다. 발소리가 느리지만 확실히 다가오고 있었다. 군홧발소리가 확연히 줄어들었다. 어디선가 비릿한 냄새가 흘러들어오는 것도 같았다. 공룡은 수현의 눈치를 보고는 조심히 라더의 등을 쳐 신호를 보냈다. 이쯤하고 돌아가자. 현금은 없지만, 이정도면 충분히 버텨. 수현은 먼저 문으로 향했다. 공룡도 금방 꼬리를 밟았다. 라더는 맨 뒤에 서서 천천히 동태를 살폈다. 더럽혀진 방이 경고의 의미로 받아들여진다면 그것보다 좋을 건 없겠다 생각했다.

"…쉿."

수현이 갑자기 멈추었다. 밖의 발소리에서 신경을 끄자 미처 알아채지 못했던 이질적인 소리가 들렸다. 숨소리. 누군가의, 공포에 질린 숨소리. 숨소리가 천천히 잦아들더니 목울대가 꿀꺽, 움직이는 소리가 났다. 신경이 예민하게 반응했다. 누군가가 방 안에 있었다. 대체 어디에, 누가? 수현은 천천히 팔을 뒤로 뻗어 공룡의 어깨를 툭, 툭 쳤다. 문 여는 순간, 뛰어. 상대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공룡이 라더의 팔을 붙잡으려는 찰나, 수현의 귀에 누군가 뛰쳐나오는 소리가 잡혔다.

 

"뛰어!"

 

수현이 더 빨랐다. 공룡이 라더를 충분히 잡았을 거라고 생각했는지, 공룡의 팔을 붙잡고 문을 박차고 뛰었다. 공룡은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며 손아귀에 끌려갔다. 라더는 상황을 이해하기도 전에 옷장 안에서 튀어나온 남성에게 밀쳐져 속절없이 방 구석으로 나동그라졌다. 공룡은 뒤늦게 상황을 파악하고 수현을 역으로 잡아끌었다. 복도 중간에 멈추었다. 라더! 짧은 비명에 가까운 외침에 수현이 재빨리 뒤를 돌았다. 둘의 눈이 마주친 순간 총성이 저택 전체를 뒤흔들었다. 피가 싸늘하게 식어 바닥으로 전부 꺼졌다. 공룡과 수현은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 총성에 잠을 깬 이웃들의 웅성거림이 한발 늦게 고막을 때렸다. 누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수현의 팔을 꽉 붙잡았다. 이번엔 수현이 끌려가는 처지였다. 라더야. 라더.

 

"정신차려! 이대로 있다가 우리도 총알받이 돼!"

 

공룡이 날카롭게 일갈하며 수현을 잡아끌었다. 시선이 계속 뒤쪽에 매달렸다. 총을 가지고 있었어? 애초에 왜, 어디에, 어떻게 숨어있던 거야? 우리가 올 걸 알았어? 수많은 의문이 머리를 강타하는 통에 역으로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겨우 정신을 차렸을 때엔 이미 어두운 골목길 안이었다.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귀금속들은 일부를 제외하면 모두 길거리에 나동그라져있었다. 식은땀이 눈으로 흘러들어가 아릿했다. 수현은 멍하니 벽에 기대어 주저앉아있다가, 라더의 이름을 부르며 울음을 터트렸다. 공룡은 상황을 파악해야만 했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올라 제어할 수 없었다.

*

 

"헉, 허억.  …."

 

라더는 떨리는 오른손을 반댓손으로 꾹 쥐었다. 하얗고 깔끔하던 이불은 붉게 적셔지고 구겨진 채로 굳어버렸다. 이마 한 가운데에 구멍이 난 남자가 그 가운데에 있었다. 상황을 되짚어봐야했다. 붉게 굳어버린 뇌를 억지로 돌렸다. 나가려고 했다. 나가기 전에 방 안을 보았다. 갑자기 수현이 공룡의 팔을 붙잡고 뛰기 시작했고, 공룡은 라더의 팔을 붙잡아주려고 했으나. 갑자기 옷장 속에서 튀어나온 이 남자 때문에 하지 못했다. 남자와 엉켜 넘어지면서 벽에 머리를 부딪혔고, 정신을 차리려고 애쓰는 와중에 남자가 라더의 멱을 잡아올려 벽에 다시 처박았다. 이럴 줄 알았어. 남자가 굉장히 격분해있던 게 생각났다. 이마에 핏줄이 불룩 튀어나와 보기 흉했다. 신문에서 보았을 땐 분명 꽤 잘 생긴 편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남자는 이 저택의 주인이었다. 여기 계실 이유가 없는, 귀하신 의원님이었다. 라더의 목을 남자의 억센 팔이 눌렀다. 남자의 왼손에 권총이 들려있었다. 더 원하는 게 뭐야. 줄 건 다 줬잖아! 그렇게 말하면서 총구를 라더의 이마에 가져다눌렀다. 차가웠다. 미치도록 차가우면서, 뜨거웠다. 이대로 죽을 수는 없다는 욕구가 심장 안쪽에서 끓어올랐다.

거기까지 생각하고, 라더는 제 오른손에 들려있던 권총을 내던져버렸다. 동시에 다리에 힘이 풀렸다. 간헐적으로 터져나오던 숨이 순식간에 솟구쳐 머리를 뒤흔들었다. 사람을 죽였다. 총을 빼앗아서, 쏴죽였다. 세상이 핑 도는 느낌과 함께 눈이 빠질듯 아파오더니 시야가 이지러졌다. 이를 악 물었다. 나가야한다. 저 녀석이 너를 먼저 죽이려고 했잖아. 공룡이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라더는 천천히, 숨을 몰아쉬며 팔을 뻗어 뒤쪽으로 중심을 옮겼다. 어떻게든, 도망가야….

"젠장. 뭐야?"

갑자기 창문 위쪽에서 누군가가 툭, 떨어져매달렸다. 뒤이어 능숙하게 창문을 깨부수고 피투성이 침대를 밟았다. 사체의 얼굴을 확인하더니, 선수를 뺏겼네. 중얼거리며 혀를 찼다. 시선이 사체에서 라더로 옮겨갔다. 검은 눈동자가 그 자리에 멈춰버린 라더를 쭉 훑어보았다. 라더도 그 사람을 훑어보았다. 검은 정장을 적당히 널널하게 차려입은, 긴 갈색 머리칼을 가진 젊은 여자. 여자는 라더의 옷에 잔뜩 튀긴 핏자국을 바라보더니, 침대에서 내려와 다가갔다.

"네가 죽였어?"

여자는 혀를 한번 더 차더니 사체의 얼굴을 다시 확인했다. 숨어계셨다 이거지? 어디서 정보가 샌 거래. 중얼거리며 이마에 선명히 난 총알구멍을 유독 오래 응시하더니, 묘한 표정을 지었다. 라더는 여자의 행동을 그저 바라만 보았다. 수현이 말한 다른 침입자가, 이 여자를 말하던 걸까? 이 여자는 어떻게 끔찍하게 죽은 시체를 저렇게 아무렇지 않게 바라보고 있는 걸까. 순식간에 너무 많은 의문이 밀려들었다.

창밖에서 빨갛고 파란 불빛이 교차로 점멸했다. 총소리를 들은 누군가가 신고를 했음이 분명했다. 여자는 신경질적으로 머리칼을 헤집다가, 라더를 다시 돌아보았다.

"너. 여기 있을 거야?"
"…네?"
"여기 있다가 경찰한테 잡혀 감방에서 썩고 싶냐고."

아뇨. 라더의 입에서 반사적으로 대답이 튀어나갔다. 경찰은 라더를 감옥 정도에서 끝내지 않을 것이다. 왜 집에 들어갔는지 추궁하며 가해질 폭력과 폭언을 생각하면 몸 안쪽 깊게 새겨진 멍이 다시 아파오는 것 같았다. 라더는 살고 싶었다. 사람을 죽여놓고, 저는 살고 싶었다. 여자는 라더의 눈을 바라보고는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이거 물건이네. 그렇게 중얼거리는 소리를 분명 들었다. 여자는 손을 내밀었다.

"나랑 같이 가자. 싫으면 여기 있다가 경찰한테 잡혀가든가."

선택권이 없었다. 라더는 여자의 손을 잡았다.
여자는 웃으며 라더를 끌어당겼다. 그럴 줄 알았어. 씨익 웃는 입꼬리가 쓸데없이 천진난만했다.

*

편하게 풀어 접어두었던 셔츠 소매를 바르게 정리했다. 베스트를 여미어 셔츠 한가운데에 적나라하게 튄 핏자국을 가렸다. 머리칼을 쓸어넘기자 안 그래도 붉은 머리칼이 더 붉게 물들었다. 너무 정리도 안 하고 왔나. 하지만 바로 오라고 하셨는걸. 덕개가 보면 그래도 되는 거냐고 까무러치겠네. 라더는 다시 한 번 소매를 정리하고, 문을 두드렸다.

"보스. 저 돌아왔습니다."

적당히 낮고 둥근 목소리가 들어오라는 명령을 내렸다. 창문 쪽을 향해 등 돌린 의자 목받침 위쪽으로 갈색의 머리칼이 밤하늘 널린 별빛을 받아 빛났다. 드르륵, 의자가 돌자 검은 정장과 눈동자가 드러났다. 책상에 손을 올리고는 천진난만하게 웃어보였다. 수고했어. 이제 다른 애들도 좀 불러올래? 라더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몸을 돌렸다. 문이 잡아주는 이 없이 쾅 닫혔다. 라더는 무심코 문 옆 복도에 당당하게 걸린 흑백 사진을 바라보았다. 5년 전 어린 자신이 딱딱한 표정을 하고 의자 옆에 서 있었다.

그리고 그 중앙, 의자에 당당하게 다리를 꼬고 앉아있는 여자에게 눈길이 갔다. 11년 전, 어린 라더를 구해주고 이 자리까지 오게 한 사람. 뺨에 붉은 핏자국을 미처 다 닦지도 못한 채 천진난만하게 웃는 사람. 지금 방 안에서 자신 손아귀 아래의 세상을 보고 있는 사람.

조직 발레나의 보스, 잠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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