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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틴] 조우 #문체압수 쉼표 3인칭 긴 문장/세밀한 묘사 < 솔직히 좀 실패한 거 같음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확 비나 왔음 좋겠다. 신발 밑창이 바닥에 달라붙었다. 그렇게 느껴질 정도로 더웠다. 찝찝한 느낌에 의미 없이 셔츠 단추를 풀었다. 한두어개 풀어헤친다고 도움될 것 없는 건 알았다. 하지만 더위에 절여진 뇌는 원래 이성적으로 판단하지 못하는 법이다. 구름이 태양을 가렸다 물러갈때마다 천국과 지옥을 오갔다. 집까지 얼마나 남았지. 더럽게 많이. 가방과 등 사이에 찝찝한 습기가 가득 찼다. 손에 든 전화기는 의미 없이 수신음만 뱉었다. 공룡(물주). 전화를 받지 않아 음성사서함으로…. "얘는 왜 또 전화를 안 받어." 아무리 친하다고 해도 주인 허락 없이..
[조직물] 하극상 아 심심한데 윗대가리 목이나 딸까 BGM : https://youtu.be/78IaxWzDkuU 공룡은 진지하지 못하다. 조직 내에 그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그에게 총을 쥐여준다는 건 안전핀 뽑은 수류탄을 바닥에 굴리는 행위나 진배없었고 그를 혼자 거래 현장에 나가게 한다는 건 적어도 신입 둘 정도의 목숨은 담보로 내놓는 셈이었다. 말단 조직원들은 저런 설렁설렁한 태도 안에 큰 힘이 숨겨져 있을 거라면서 수군댔고 어느 정도 연차가 쌓인 조직원들은 저 속은 텅 빈 주제에 어깨에 힘이나 주고 다니는 녀석의 멱살을 잡아 끌어내릴 기회만 호시탐탐 엿보고 있었다. 동기 라더는 늘 비교대상이었다. 과묵하고, 능력 있고, 보스에게 도움이 된다면 제 손가락 두어 개 정도는 가볍게 내놓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
[하이틴+아포칼립스] 숨 난 성인이 되기 전에 죽을 거야 *우울의 함량이 높은 글입니다. 주의해주세요. *교살, 그 외 폭력적 상황의 직간접적 언급이 다수 존재합니다.BGM : youtu.be/2VFgF1ynCbI "또 시작이네." "엄밀히 말하면 생각이 바뀐 적 없으니까 '또'도 아니고 '시작'도 아니지.""예, 예. 참 잘나셨어요." 각별은 아무렇지 않게 아이스크림 꼭지를 입에 물었다. 거슬한 가장자리에 입술이 살짝 베였는지 소다의 인공적인 맛 뒤로 비릿한 쇠맛이 스며들었다. 뜨거운 공기와 대조되는 한기에 아이스크림을 쥔 손이 얼얼했다. 공룡은 아이스크림을 크게 베어물다가, 뭔가 어긋났는지 인상을 팍 썼다. 으, 이 시려. 그러게 이 좀 잘 닦으랬지. 하는 시덥잖은 대화가 오갔다. 긴 머리칼이 덮은 뒷목에 불쾌한 열기가 돌아..
[유토피아] 미련 모두들 살고 싶어한다 3개월. 어쩌면 조금 더. 난데없이 벼락이 떨어졌다. 그렇게 행복한 삶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빨리 마무리 지어질 만큼 가치 없는 삶도 아니었다고 생각했는데. 손에 쥐고 있던 모든 것이 속절없이 바닥 그 이하 깊은 곳으로 추락했다. 신이 정말 계신다면 나한테 이럴리가. 굳게 믿어왔던 신념이 조각나 발바닥에 큰 흉터를 남겼다. 앞으로 걸어나가는 게 이토록 두려운 일이었던가. 멈출래도 멈출 수가 없다. 발을 움직이지 않으니 조각이 발 속으로 파고들고 움직이자니 딛는 모든 곳이 핏물이다. 선택지가 많지 않으니 일단 웃으며 걷는 쪽을 택한다. 신을 원망하기보다는 자신을 원망하는 쪽을 택했다. 신에게 버림받았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어질 게 분명하다. "제가 직접 죽여야합..
[혁명] 심해 BGM : youtu.be/L9vLOGoMrOs 얕은 파도에 쓸려간 모든 이들에게 "라더야." 목소리가 어른거린다. 귓속이 물로 꽉 차서 잘 들리지 않았다. 입을 벌리니 내장을 채우고 남은 물들이 벌컥거리며 튀어나왔다. 외부와 오랜 시간 단절되어 약해진 피부는 바닷물의 소금기에 금방 고통을 호소했다. 수압에 눌린 눈꺼풀을 애써 들어 올렸으나 물이 눈 속에도 들어찼는지 세상이 일렁이다 흘러내리길 반복했다. 속절없이 몸을 기댄 금색 바윗덩이가 손발을 묶었다. 손가락 하나 움직이기 벅찼다. 온 세상이 물에 잠겼다. 온통 푸르른 눈 앞에 네가 똑바로 서 있는 게 보였다. 차가운 수중에 네 손만 따뜻했다. 언젠가 인간의 오만에 분노한 신이 세상을 물로 쓸어버렸더라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났다. 선택받은 이들은 방..
[포스트 아포칼립스] 목적지 * 전체적으로 우울감의 밀도가 높은 글입니다. 주의해주시기 바랍니다. BGM : youtu.be/oakL_SppwP8 세상은 멸망했다. 어떤 징조도 없이 순식간에 멸망했다. 아니지, 생각해보면 전조는 있었다. 지속되는 환경오염, 뉴스에서 입 아프게 떠들어대던 바다 건너의 전쟁, 어딘가에서 퍼지고 있던 전염병. 눈치채지 못했거나 눈치챘음에도 신경 쓰지 않았던 것이지 멸망은 차근차근히 그리고 확실하게 진행되어가고 있었다. 정확한 사유는 기억나지 않았다. 눈을 깜빡였더니 평온한 일상 속에서 공허한 폐허로 옮겨졌다. 무너진 건물 잔해와 밑에 깔린 주인 모를 신체부위들을 보며 쉴 새 없이 구역질을 했던 게 기억났다. 움직였던가, 반복된 구역질 탓에 시야가 어그러져 보이지 않았다. 이제까지 본인이 유리되어있다고 느..
[스팀펑크] 2화 2. 현자의 돌 도시의 구역들 중 가장 이질적인 구역을 꼽자면 당연하게도 중심구역이다. 시청과 철도 등 여러가지 시설들이 있는 C를 중심으로 사방으로 나뉜 4개의 구역과 그 구역 내에 빽빽히 들어찬 거주용 건물들. 그 건물들 안을 가득 채운 사람이 사는 방들. 거주지라는 목적을 충실히 이행하는 곳이었다. 가장 많은 사람이 살고 있음에도 사람이 사는 냄새가 나지 않는다는 점이, 가장 아이러니했다. 이 도시의 시장은 상징적인 존재였다. 선대 시장들이 차례차례 쌓아올린 체제는 자리에 굳어져 제 역할을 잘 하고 있었다. 각별은 그 자리에 가만히 버티고 서서 간간히 발생하는 문제에 관련된 서류를 확인하고 도장 몇 번 찍기만 하면 되었다. 갑작스럽게, 비교적 어린 나이에 시장직에 올랐음에도 별 잡음이 없었던 이유였..
[겨울신화] 상념 눈이 녹는다. 회색 눈구름이 흩어지고 태양이 솟았다. 몸에 덮여있던 눈들이 먼저 녹아가는지 옷가지가 축축하게 달라붙었다. 체온이 없으니 눈이 녹을 이유가 없을텐데, 하고 이상하게 생각하던 찰나 옷가지를 적시는 것이 비단 눈이 녹은 물 뿐은 아님을 깨달았다. 손끝에 까슬거리는 잔디가 닿았다. 눈에 오랜 시간 덮여있었음에도 끈덕지게 뿌리를 뻗어나가던 잔디가 닿았다. 신은 죽으면 어떻게 되는가? 죽어버린 신에 대한 이야기는 없어 알지 못했다. 언젠가 신은 죽지 않고 영원히 순환한다는 말을 들은 것도 같았다. 어딘가의 신화에는 신을 죽인 인간의 이야기가 쓰여있었던 것도 같았다. 기억도 나지 않는 오랜 옛날, 신으로 눈을 뜬 순간부터 의식 밑바닥에 가라앉아있던 궁금증을 이렇게 풀게 되는구나. 겨울신은 녹아가는 입..